관심사

안녕하세요~~ 여러분!! 관심사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재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상식으로 읽어보는 역사는 재미있어도 너무 재미있는데요.

여러가지 비밀들이 숨어 있는 줄 누가 알았을까요?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간단한 상식들도 역사 속에 숨어있습니다.

오늘은 역사와 문화 속에 숨어져 있는 재미있는 주제의 상식들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축구의 오프사이드 규칙이 생긴 이유는???

여러분 축구 다들 좋아하시나요?

저는 축구를 많이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규칙도 잘 모르는데요...

그런 제가 유일하게 아는 규칙이 바로 오프사이드입니다.


오프사이드란 축구경기에서 상대 팀 수비수보다 더 골대 가까이에 있는 같은 편 선수에게 패스하면 안되는 반칙인데요.

골을 넣어야 이기는 축구경기에서 무슨수를 쓰든 득점만 하면 될 텐데, 이런 경우에 오프사이드 반칙이 되고, 생겨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중세 영국의 마을 축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당시 부활절을 앞둔 마을 축제의 메인 이벤트로 벌어진 '매스 풋볼'은 무려 1,000명의 사람들이 4킬로미터 거리의 골대를 사이에 두고 도시 전체를 무대로 하여 하루정일 언덕을 넘고 시내를 건너며 도시의 큰길과 벌판을 휘저으면서 내달리는 공동체 최대의 행사였는데요.


이 매스 풋볼이 후에 근대 스포츠 축구와 럭비로 발전한 것입니다.

오프사이드 규칙은 풋볼의 원래 목표가 '오랫동안 즐기는 것'이었음을 상기시킵니다.

매스 풀볼은 '1점 선취', 즉 한 점을 먼저 얻으면 그것으로 끝인 경기였습니다.

한 점을 넣게 되면 풋볼도 끝나고 축제도 끝이었는데요.


따라서 그 당시에 득점을 어렵게 하여 더 오랫동안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생겨난 규칙이자 반칙이 되어버린 오프사이드가 근래의 축구에서도 적용되어 있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스포츠는 원래 자기들이 즐기기 위한 것이었을 뿐 경쟁이 목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지 않는 이유는???

언제부터 인지 모르겠지만 저도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려 하면 좀 꺼려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 유치원생, 초등학생 시절 때부터였던 것 같은데요.

사람들은 왜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지 않을까요?


빨간색 펜으로 이름을 쓰려 하면 질색하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빨간색으로 사람의 이름을 쓰면 그 사람이 죽는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인데요.

도대체 어디서 유래한 속설일까요?


중국 하면 어떤 색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중국 하면 붉은색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사실 여러분들도 붉은색을 생각하셨을 겁니다.

이 정도로 중국과 붉은색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붉은색을 부의 상징이자 격조 높고 고귀한 색으로 여겼는데요.

이러한 생각은 오래전 춘추전국시대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 중국인들은 생활 곳곳에 붉은색이 깊이 스며들어 있어서 옷과 침구, 음식에도 붉은색을 애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진나라를 통일한 후 진시황이 황제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엇이든 최고급만을 사용하려 했던 그는 특히 사람들이 온갖 좋은 의미를 붙이고 즐겨 쓰는 붉은색을 자기 혼자만 사용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글을 쓰는 먹조차도 검은색이 아닌 붉은색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니 황제가 쓰는 글씨는 모두 붉은색이 되었고 진시황은 자기 외에는 누구도 붉은색으로 이름을 쓸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를 어기는 자는 가차 없이 처형을 해 버렸다고 합니다.

황제의 이름을 쓰는 고귀한 색으로 보잘것없는 백성의 이름을 쓰는 것은 황제를 능멸하는 일이라고 여겼기 떄문입니다.

사람들은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붉은색으로 이름을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진시황의 욕심 때문에 붉은색으로 이름 쓰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이것이 우리나라에까지 넘어와 오랫동안 속설로 굳어진 것입니다!!




결혼 반지는 왜 왼손 약지에 낄까요???

결혼 반지를 왼손 약지에 끼기 시작한 것은 고대 그리스인들입니다.

그들은 왼손 약지가 동맥을 통해 심장에 직접 연결된 것으로 믿고 있었고, 동맥을 '사랑의 핏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약속인 결혼반지를 왼손 약지에 끼게 된 것인데요.

이런 관습은 후에 기독교인들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결혼식을 올릴 때 신랑이 우선 신부의 검지 끝에 반지를 놓고 '성부의 이름으로'라고 말하고, 그 다음 신부의 중지에 반지를 놓고 '성자의 이름으로'라고 말한 다음, 마지막으로 신부의 약지에 반지를 끼워 주면서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이 관습은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전해져 대부분의 결혼식에서 신랑이 신부의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워 줍니다.

하지만 가톨릭 결혼식에서는 신부의 오른손 약지에 반지를 끼우고, 유대교 결혼식에서는 오른손 검지에 반지를 끼운다고 합니다!!




한 시간이 백 분이면 안될까???

우리는 생활에서 십진법을 주로 사용하지만 현재 시간만은 십진법을 쓰지 않습니다.

예전부터 저도 궁금증이 있던 부분인데요.


하루 중 오전과 오후는 각각 12시간씩이고 각 시간은 다시 60분으로 나뉘며 각 분은 다시 60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도 십진법을 따라 10 또는 100으로 나눌 수는 없을까요?

십진법을 사용하는 우리 생황에서는 이것이 더 편리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프랑스 대혁명이 끝난 후 프랑스의 과학자들 역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측정 단위를 간단히 하기 위해 미터법을 창안했는데요.

또 시간에 대해서도 십진법에 기초한 미터법을 적용시켜 정오와 자정 사이를 10시간으로 나누어 하루를 20시간이 되게 하고 1시간을 100분, 1분을 100초로 정했습니다.

또 일주일은 10일, 한 달은 3주, 즉 30일이 되게 하였는데요.

그런 다음 30일로 된 달 12개와 닷새를 합쳐서 1년으로 정했습니다.

프랑스인들은 이 새로운 시간 계산법이 자리잡게 하려고 13년이나 노력했는데요.

지금 우리가 쓰는 12시간 시계와 10시간 시계를 함께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이미 하루 24시간과 60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혼란만 주었을 뿐입니다.

결국 미터법에 의한 시간 구분은 폐기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온 것은 언제일까요???

1887년 3월 6일, 우리나라 최초로 경복궁 안에 있는 건청궁에 전등이 켜졌습니다.

이때는 토마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지 겨우 8년 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인데요.

그때는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경복궁 안에 있는 향정원 연못가에 세워진 발전기에서 전기를 얻었었습니다.


이 발전기는 16W 전구를 750개 켤 수 있는 정도의 규모였다고 하는데요.

가정집 화장실에 쓰는 전구도 최소한 40W나 60W는 되는 지금과 지교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작은 규모였습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동양에서는 가장 성능이 뛰어난 발전 설비였습니다.

그만큼 돈도 많이 드는 일이어서 당시에는 궁전 외의 다른 곳에 전등을 설치할 수도 없을 정도였는데요.


궁궐에 사는 사람들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전등의 혜택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서입니다.

1900년 4월 국내 최초로 길에 전등을 달게 되었는데, 이것은 당시에 이미 운행되고 있던 전차를 밤중에도 운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길에 등을 달아 밤길을 비출 수 있게 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정말 대단한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차가 오른쪽으로 다니는 이유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차는 오른쪽으로 다닙니다.

하지만 영국을 비롯해서 호주, 뉴질랜드, 인도, 자메이카 등 예전에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에서는 차가 왼쪽으로 다니는데요.


사실 중세시대부터 사람들은 걸을 때나 말을 타고 다닐 때 서로 왼쪽으로 비껴 다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마주보며 지나갈 때 칼을 뽑기 쉽도록 왼쪽에 차고 다녔다는데요.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마주보며 지나갈 때 칼이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왼쪽으로 비껴 다닌 것입니다.


또 마주 오는 기사와 싸우게 되더라도 적을 오른편에 두는 것이 싸우기 편했기 때문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옛날에는 말과 사람이 왼쪽으로 다녔고 자동차 역시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어떤 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차가 오른쪽으로 다니기 시작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프랑스의 나폴레옹 때부터입니다.

18세기 말 유럽의 기마병들은 말고삐를 오른손으로 잡고 창을 왼손에 쥔 채 적을 공격했는데요.

그런데 나폴레옹은 이를 역이용하여 프랑스의 기병대로 하여금 왼손에 말고삐를 잡고 오른손에 창을 잡고 공격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이것은 상대 병사들을 혼란스럽게 했고, 덕분에 나폴레옹은 전쟁마다 연승을 거두며 많은 나라들을 점령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나폴레옹은 자기가 최고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자기가 점령한 스페인, 벨기에 등에서는 마차나 수레들이 모두 오른쪽으로 다니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서유렵의 모든 나라들이 오른쪽 통행을 하게 되었지만, 영국은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왼쪽 통행을 하던 관습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